16세기 한국어 한국어의 역사 2016. 5. 26.
16세기 한국어의 성격 16세기는 중세(14~16세기)에서 근세(17~19세기)로 넘어가는 과도기. 16세기는 중세(14~16세기)에서 근세(17~19세기)로 넘어가는 과도기. 이 두 시기를 가르는 경계선에 임진왜란이 있음. 20세기 초,중반에는 임진왜란이 언어 변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 목되었음. 큰 전란은 인구 이동, 방언간 접촉을 유발하여 언어 변화의 원인 이 될 수 있음. 그러나 중세어와 근세어 사이의 차이는 임진왜란 이전에 16세 기 동안 축적된 여러 변화들의 결과임.
유성 마찰음 계열의 소실: /ㅿ/[z] ‘ㅸ’[β]은 15세기 중엽에 소실. 15c 말 杜詩諺解에 이미 ‘’(間)~‘이’, ‘’(每)~‘’의 동요가 보임. 16세기의 초 문헌에서는 ‘ㅿ’이 대체로 유지되나 i, y 앞에서 ‘ㅿ’이 소실된 예가 보임. 이, 어버이, 녀름지이, 아이-(被奪, <이-), 처엄; 일(來日) 한자음의 경우, 15세기 말의 六祖法寶壇經諺解에 ‘人인’, ‘然연’ 등 ‘ㅿ’이 소실된 예가 보이며, 16세기 초의 飜譯小學, 訓蒙字會에 오면 동요의 폭이 커짐. i, y 앞이라는 환경에서는 ‘ㅿ’의 소실이 1510년대에 이미 거의 완성 단계. 16세기 후반 문헌은 ‘ㅿ’이 소실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줌. ‘’, ‘-’, 한자어 표기에서 ‘兒’, ‘而’ 등이 겨우 명맥을 이어 가기는 했으나 이것은 문자의 보수성에 말미암은 것. 16세기 중엽에 이미 완전히 소실되었다고 볼 수 있음. ‘ㅿ’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ø로 소실되었으나 ‘ㄴ, ㅁ’ 뒤라는 특수 환경에서는 일 부 ‘ㅈ’으로 변하기도 했음. 16·17세기 문헌에 ‘손조’(<손), ‘몸조’(<몸)가 보이며 ‘남진’(<男人남)은 15세기부터 보 인다. 현대어의 ‘삼월삼짇날’도 ‘三日삼’에서 온 것.
유성 마찰음 계열의 소실: /ㅇ/[ɦ] 15세기에는 ‘ㅇ’[ɦ]이 하나의 자음 음소로서 존재했음: 닐거-닐어. 그러나 분포가 매우 제약되고 기능부담량이 적었기 때문에 비음운화할 (음소로서의 자격을 상실할) 가능성을 다분히 가지고 있었음. ‘ㅇ’[ɦ]이 이전 시기의 ‘ㄱ’이 약화된 결과이고 결국 ø로 가는 중간 단계라고 할 때 이의 소실은 숙명적. ‘ㅇ’[ɦ]이 ‘ㅿ’ 뒤에서는 주로 ø로 바뀜. ‘ㅇ’[ɦ]이 ø로 바뀜에 따라 15세기에 분철되던 단어들이 16세기에는 연철되게 됨. 애(剪, 가위)>, 위(蚯蚓)>거, 이(ㅇ+이)>아. ‘ㄹ’, y 뒤에서는 유추의 작용에 의해 이전 시기의 ‘ㄱ’으로 되돌아감. 알오>알고, 외오>외고, 아마괴>가마괴, 티>티. 어간 내부, 특히 특수어간교체 어사의 경우 [lɦ] 연쇄가 [ll]로 변함. 달아>달라
‘ㆍ’의 제1단계 비음운화 ‘ㆍ’가 음운론적 단어의 제1음절에서 비음운화(음소 자격 상실, 다른 모음 과 합류. 주로 /ㅏ/와 합류)하는 것은 18세기 음운론적 단어의 제2음절 이하에서 비음운화한 것은 16세기. 주로 /ㅡ/와 합류. 15세기의 ‘ㆍ’가 ‘ㅡ’로 변한 것이 일반적이나, (특히 주위에 원순모음이나 w, 양순음이 있을 때) ‘ㅗ’로 변한 것도 꽤 있고 ‘ㅏ’로 변한 것도 소수 있음. 飜譯朴通事: 다으-<다-, 듸<(의존명사), 기르마<기마, 모든<모, 도즉 -<도-, -마른<-마, 녀나믄<녀나, 션븨<션, 다믄<다<다 飜譯小學: 가븨야온, 들-, 반드시, 션븨, 가면, 마, 다슴어미, 남즉- 訓蒙字會: 기르마, 여, 가플(鞘), 마(府) 新增類合: 여으, 노로, 람(壁)< 四法語錄: 사름(人)
‘ㆍ’의 제1단계 비음운화 15세기 문헌에서 ‘ㆍ’의 동요 또는 원순성 동화를 보여주는 예 원순성 동화 어미/조사 먼딋(胡敎, 월석 2: 69), 나그내(杜詩諺解에서는 ‘나내’는 전혀 없고 항상 ‘나그내’임), 기르 마(두초 20: 44), 션븨(두초 24: 21), 가그기(구간 76) 노로(獐, 訓民正音解例), 밧고로(外, 몽산 64), 조로이(두초 25: 8), 받조올(두초 23: 50), 아 못 거소뢰나 두 귀 막고(구간 61) 원순성 동화 -로>-오로: 소노로(手), 랑오로, 호로, 추모로(唾), 고로(泥), 오로, 아호로; 뵈야 호로, 보야흐로 -록>-도록: 새도록, 죽도록, 늙도록, 도록, 도의도록, 져므도록 기타 ㆍ>ㅗ: 모로게(不知), 말솜(辭), 소기디(欺) 어미/조사 飜譯朴通事: 믈, 앏픠, 담은, 남글, 노믄, 옥으로, 비단으,로, 갑슨, 산으로 飜譯小學: 사믄, 믄, 사으로, 므란, 사믜, 말믈, 햐근, 근, 쟈근, 갓근, 노픈; 일후 , 주, 너 현대 제주도 방언은 제2음절에서 ‘ㆍ>ㅡ’의 경향이 중앙 방언보다 더 철저함. (風)>parɨm, 사(人)>sarɨm
음절말 자음 ‘ㅅ’과 ‘ㄷ’의 대립 상실 음절말의 ‘ㅅ’과 ‘ㄷ’은 15세기에는 표기에 조금도 혼동을 보이지 않으므로 실제 발음에 있어서도 분명하게 구분되었던 것으로 추측됨. 16세기 초에 오면 ‘갓나/갇나’와 같은 ‘ㅅ’과 ‘ㄷ’의 混記例, ‘인니’(<잇 니), ‘난나치’(<낫나치), ‘이튼날’(<이틋날<이틄날)과 같이 형태음소 ‘ㅅ’ 이 ‘ㄷ’으로 변하여 ‘ㄴ’으로 동화된 예 등을 보여줌. 이것은 한국어사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지속적으로 작용해 온 음절말 불 파화 경향의 마지막 사건. 평음/된소리/유기음, 폐쇄음/파찰음의 대립은 이미 15세기 이전에 中和 되었음. 16세기에 폐쇄음과 마찰음, 즉 ‘ㄷ’과 ‘ㅅ’의 대립마저 중화된 것
성조의 소멸 성조 율동 규칙의 변화: 15c: HHHH→HHLH, 16c: HHHH→HLLH 16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去聲不連三을 위배하는 예들도 나타나고 기존 의 聲調型에 맞지 않는 예들이 많이 나타나 성조 율동 규칙이 무색할 정 도에까지 이름. 모음으로 끝나는 1음절 용언 어간이 결합되는 어미에 따라 平聲과 去聲 으로 교체하는 현상은 16세기에도 비교적 잘 지켜지는 편이었음. 그러나 15세기에 上聲을 갖던 어휘 요소가 16세기에 去聲으로 변한 예 도 나타나고, 15세기에 고정적 거성이던 매개모음이 평성으로 나타나기 도 하는 등 15세기의 정연했던 성조 체계가 붕괴되어 감. 일부 문헌은 방점 표기에 일관성이 없거나 방점을 아예 표기하지 않음. 16세기는 성조 체계의 붕괴 과정을 보여주는 과도기. 경상 방언과 함경 방언에는 지금도 성조가 남아 있으므로 이런 성조의 소멸은 방언에 따라 차이가 있었을 것.
어두 경음화, 격음화 한국어의 장애음 음소들 중 격음과 경음은 비교적 늦게 발달. 중세어는 현대어보다 이런 경향이 더 심했음. 어두 위치에 그리 많이 사용되지 않는 편. 중세어는 현대어보다 이런 경향이 더 심했음. 16세기 이후 어두의 평음이 경음으로 변한 예가 꽤 있음. ‘븨-’(揑), ‘드리-’, 杜詩諺解 ‘그-’(引)>‘-’, 救急簡易方 ‘딯-’(擣)>‘-’ 등 이 변화는 이미 15세기의 문헌에서도 조금 보임. 16세기에는 ‘짖-’, ‘쑤-’, ‘-’(撒), ‘씹-’(噙), ‘-’(沸), ‘싸-’(剉) 등으로 이 현상이 꽤 확산 됨. 대개 격렬한 동작을 나타내고자 하는 표현적 욕구가 이런 변화에 작용한 듯. 16세기의 어두 유기음화의 대표적인 예: ‘’(臂)<‘’, ‘코’(鼻)<‘곻’, ‘칼’(劍)<‘갏’ 모두 어간말에 ‘ㅎ’을 가진 ㅎ말음체언. 이 ‘ㅎ’이 어두 유기음화에 모종의 작용을 한 듯. ‘곶’(顔色)>‘곷’과 같은 어말 유기음화의 예도 소수 있음.
순행의 유음화 15세기 이전의 어느 시기에 치음과 설음 앞의 ‘ㄹ’이 탈락. 15세기에 이 현상은 많이 약화되어 음소배열제약의 지위까지 갖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전 시기의 음소배열제약의 잔영으로서 치음과 설음 앞의 ‘ㄹ’이 탈락된 형태를 많이 보여줌. 그래서 ‘ㄹㄴ’ 연쇄는 15세기에 별로 존재하지 않았음. 다만 치음, 설음 앞의 ‘ㄹ’을 불허하는 음소배열제약이 소멸된 뒤에 새로 만들어진 합성어 에 그런 연쇄가 나타남: 나-(勇, <-나-) 용언 어간말의 ‘ㅀ’에서 ‘ㅎ’이 선어말어미 ‘--’ 앞에서 탈락된 ‘일니라’(<잃--니라) 같은 형태에서도 ‘ㄹㄴ’ 연쇄가 나타남. 본래 어간말이 ‘ㄹ’인 경우는 이전 시기의 음소배열제약의 결과를 그대로 유지하여 어미의 ‘ㄴ’ 앞에서 어간말의 ‘ㄹ’이 탈락: 아니<알--니 어간말 ‘ㅎ’의 탈락으로 ‘ㄴ’과 접하게 된 ‘ㄹ’은 탈락하지 않음. 15세기에는 이런 ‘ㄹㄴ’ 연쇄가 ‘ㄹㄹ’로 동화된 예는 전혀 보이지 않음. 현대어와는 달리 ‘ㄹㄴ’ 연쇄를 허용했는지도 모름. 16세기에 오면 ‘ㄹㄴ>ㄹㄹ’의 변화를 보여주는 예가 나타남. 라-<나-, 일니라<잃--니라 등 ‘ㄹㄴ’ 연쇄를 불허하는 음소배열제약이 16세기에 생겼거나 그러한 현상을 표기로 반영하 기 시작했음을 의미
역행의 유음화 ‘ㄴㄹ’ 연쇄는 고유어에서는 발생하기 어렵고 한자어에만 존재. 15세기의 한자어는 동국정운식 한자음으로 표기되거나, 현실음으로 표 기되더라도 한자의 본래 음으로 표기되는 경향이 있어, 한자들끼리의 결합에서 발생하는 음운 과정을 거의 보여주지 않음. 두음법칙을 반영한 ‘’(來日), y 뒤의 ‘ㅿ’화를 반영한 ‘’(每常) 등은 거의 고 유어화했기 때문에 음운 과정의 결과를 보여줌. 따라서 한자어에서의 ‘ㄴㄹ’ 연쇄에 동화가 적용되었는지를 15세기 문 헌에서는 알 수 없음. 16세기 문헌에서는 한자어에서도 음운 과정을 반영한 표기가 많이 나 타남. 飜譯小學의 ‘일륜’(人倫)은 16세기에 ‘ㄴㄹ’ 연쇄가 허용되지 않아 ‘ㄹㄹ’로 동화 가 일어났음을 보여줌. 16세기는 順行의 유음화와 逆行의 유음화가 (최소한 표기상) 모두 발생 한 시기
특수어간교체 어사의 변화 15세기에 이른바 특수어간교체를 보이는 단어들 중 용언 활용에서 ‘ㄹㅇ’형이었던 것들이 16세기에는 ‘ㄹㄹ’형과 합류됨. 15세기의 ‘닐어’, ‘달아’, ‘올아’ 등이 ‘닐러’, ‘달라’, ‘올라’ 등으로 바뀜. 이 점에서 16세기는 벌써 현대어적인 모습을 띠게 된 것이다. 이 변화는 특수어간교체 어사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어서 ‘몰애’와 같 이 형태소 내부 및 기타 환경의 ‘ㄹㅇ’[lɦ] 연쇄도 대체로 [ll]로 변함. cf. 현대 경상방언: 올해>올래, 괄호>갈로 소수의 경우에는 [ll]이 [r]로 변하기도 함: 놀애>노래.
‘ㄱ’ 약화 현상의 소멸 경향 15세기에는 용언 어간말의 ‘ㄹ’, y 뒤에서 어미의 첫 자음 ‘ㄱ’이 ‘ㅇ’[ɦ]으로 약 화되는 규칙적인 현상이 있었음. ‘-고’, ‘-거늘’, ‘-게/긔’ 등이 ‘ㄹ, y’ 뒤에서 ‘-오’, ‘-어늘’, ‘-에/의’로 교체. 그런데 ‘ㄹ’, y 뒤의 ‘ㄱ’을 불허하는 음소배열제약이 15세기에 이미 소멸되어 있었음. 어미의 이형태를 줄이려는 유추의 작용이 힘을 발휘하여 이 ‘ㄱ’-‘ㅇ’ 교체가 많이 없어지게 됨. 용언 어간말의 ‘ㄹ’, y 뒤에서도 ‘ㄱ’이 약화되지 않고 그대로 쓰이게 됨. 이 역시 16세기에 이미 현대어적인 모습으로 바뀐 예. 공동격조사 또는 접속조사 ‘-과’도 15세기에는 모음과 ‘ㄹ’ 뒤에서 ‘ㄱ’이 약화 된 ‘-와’[ɦwa]로 실현됨. 16세기에 오면 ‘ㄹ’이나 모음(특히 i, y) 뒤에서 ‘-과’로 표기된 예가 많음. 술과 차반(소언 5:50), 샷거 말과(야운 48), 글쓰기과 산계홈(소언 1:11). ‘ㄹ’ 뒤에서 ‘-과’가 쓰이는 것은 현대 한국어에까지 이어졌으나 모음 뒤에서 ‘-과’가 쓰이는 일은 근세어 시기까지 지속되다가 현대어에서는 다시 ‘-와’를 쓰게 됨.
어미 모음의 양성모음화 경향 15세기에는 음성모음이었던 어미의 모음들이 16세기에 와서 양성 모음으로 변한 경우가 많음. -녀>-냐, -려>-랴, -져>-쟈, -고져>-고쟈, -과뎌>-과댜, -오려>-으 랴, -ㄹ셔>-ㄹ샤, -ㄴ뎌>-ㄴ댜, -고녀>-고나,-고야,-괴야, -며>-먀 이것은 규칙적인 음변화(sound change)라고 할 수는 없으나 많은 어미들이 같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할 만함. 대개의 경우 양성모음으로 바뀐 어미의 모음들이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짐. 그러나 반대 방향의 변화도 없지는 않음: -라>-러
청자 대우법 체계의 변화 15세기의 3+1 체계(라체, 야쎠체, 쇼셔체; 반말체)에서 야쎠체는 원래 사용 빈도 가 낮고 불안정했음. 야쎠체는 쇼셔체를 단축시킨 형태인데(형태를 단축시키면 대우 등급이 낮아짐) 단축형은 숙명적으로 지위가 불안정함. 16세기가 되면 야쎠체는 더욱 위축/소멸되고 반말체가 그 자리를 메꾸게 됨. (반말체 는 야쎠체보다는 대우 등급이 약간 낮음) 반말체는 ‘ㅣ‘로 끝나는 것이 특징: , 리, , 뇌, 데, 도쇠, 리로쇠 반말체 기원에 대한 논란 쇼셔체 ‘다’에서 뒷부분의 절단과 축약을 통해 ‘’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고 야쎠체 ‘다’에서 절단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음. 평서형, 의문형에서는 ‘야쎠’체의 위축으로 인한 공백을 반말체가 메꾸지만 명령형에서는 ‘소체’와 반말체 명령형 ‘-고라’, ‘-고려’가 메꿈. ‘소체’의 명령형 어미 ‘-소’는 어간말 음소에 따라 ‘-’, ‘-조’로도 나타남: 자, 받조 ‘-소//조’의 교체 조건은 이들이 선어말어미 ‘--’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시사. ‘소’체는 16세기에는 그리 많이 쓰이지 않았으나 17세기에 가면 상당히 많이 쓰이게 됨. 구어체에서는 16세기에도 이미 사용 빈도가 높았을 듯. 예가 적기는 하지만 ‘-오여’라는 명령형 어미도 등장. :가여(번박 상 63), :가듸여(번노 상 18), 호여(번노 상 49), 마로여(번노 하 23)
의문형의 변화 평서형의 반말체, 명령형의 ‘소’체와 평행하게 의문형에서도 이와 같은 등급의 어미가 발생. 평서형의 반말체, 명령형의 ‘소’체와 평행하게 의문형에서도 이와 같은 등급의 어미가 발생. ‘-ㄴ가’, ‘-ㄴ고’는 본래 간접 의문에만 사용되었으나 15세기에 이들이 직접 의문으로 쓰인 예도 일부 있음. 16세기에 오면 직접의문으로 자유롭게 쓰이게 됨. 이 또한 ‘야쎠’체의 위축으로 인한 공백을 메우려는 구조적 압 력의 결과. 따라서 ‘-ㄴ가’, ‘-ㄴ고’가 ‘야쎠’체에 해당하는 청자 대우법상의 등급(또는 그보다 약간 낮은 등급)을 맡게 되었음.
감탄형 16세기에는 감탄형에서도 ‘-고녀/-괴여/-고나’ 등의 새로운 어미가 출현. 15세기에는 이들 어미가 전혀 안 보임. 이들은 수의적 변이형으로서 ‘-고녀’가 본래적 모습. ‘-고나’는 16세기의 어미 모음 양성화 경향의 결과 ‘-괴여’는 y 앞에서 ‘ㄴ’이 탈락한 결과. 15세기에는 이들 어미가 전혀 안 보임. 고려시대 釋讀口訣에는 ‘-(곤여)’가 보임. 고려시대 구결의 표기로 보아 ‘-고녀’는 기원적으로 선어말어미 ‘-고-’, 동명사 어 미 ‘-ㄴ’, 감탄 조사 ‘-여’의 결합체임을 알 수 있음. 고려시대 구결 자료에는 ‘-’ 외에도 ‘-’ 등도 나타남. 왜 동명사 어미 ‘-ㄴ’과 감탄조사의 연결형은 살아남고 동명사 어미 ‘-ㄹ’ 과 감탄조사의 연결형은 사라졌는지, 그리고 15세기 문헌에는 왜 ‘-고녀’ 가 전혀 보이지 않는지 수수께끼임.
연결어미 연결어미 체계에 큰 변화는 없었음. 다만 어미 모음의 양성모음화 경향에 따라 외형상의 변화가 약 간 있었음. -고져>-고쟈, -과뎌>-과댜, -며>-먀, -오려>-으랴. 15세기의 ‘-건마’이 16세기에는 대부분 ‘-건마’으로 표기됨. 이것은 외형상의 매우 사소한 변화이지만 15세기 문헌과 16세기 문헌을 갈라 주는 두드러진 지표 중 하나. ‘-오’에서 ‘-오-’가 빠지고 ‘-(/으)’로 쓰이기도 하고 ‘오’의 원 순성이 뒤로 이동하여 ‘-(/으)되’로 쓰이기도 함. 이것은 선어말어미 ‘-오/우-’의 소실과도 관련
명사형어미 15세기에 명사형어미 ‘-옴/움’은 항상 ‘-오/우-’를 동반한 형태로 만 나타남. 이 ‘-오/우-’는 기원적으로는 선어말어미이겠지만 15세기에는 ‘-옴/움’ 전체가 하나의 형태소가 되었다고 해야 할 것. 16세기에 오면 명사형어미가 ‘-음’으로 ‘-오/우-’ 없이 나타나기 시작. 이것은 선어말어미 ‘-오/우-’의 소실과도 관련
선어말어미 ‘-오/우-’ 15세기의 ’-오/우-’의 4가지 용법 이 중 ③은 15세기에도 ‘-오-’의 사용이 수의적이었으나 ⓞ 형태소로서의 자격을 갖지 못하고 항상 어미의 일부로만 쓰이는 경우. -옴, -오마, -오려, -오 ① 종결형과 ‘-(으)니’ 연결형에서: 주어가 1인칭(화자)임을 나타냄. ② 관계절에서: 피수식 명사가 관계절 내에서 의미상 대상임을 나타냄. ③ 보문 관형절에서 수의적으로 쓰임. 이 중 ③은 15세기에도 ‘-오-’의 사용이 수의적이었으나 ①, ②는 15세기에 ‘-오-’의 사용이 매우 규칙적이었음. 16세기에 들어 특히 ②에서 ‘-오-’가 빠지는 일이 많이 생기게 됨. ⓞ에서 ‘-오-’가 빠지는 일은 이보다 좀 늦게 발생한 듯.
-아/어 잇- > -앳/엣- > -앗/엇- 15세기의 ‘-어 잇-’은 진행상, 결과상 등의 폭넓은 의미를 지녔음. ‘-아/어 잇-’이 형태상 축약된 ‘-앳/엣-’, ‘-앗/엇-’이 15세기에도 보이나, 의미상 의 차이는 없음. 15세기에 ‘-어’가 담당했던 기능의 상당 부분을 현대어로 오면서 점차 ‘-고’에 게 넘겨주게 되므로, 현대어의 ‘-고 있-’에 해당하는 의미는 15세기에 ‘-어 잇- ’으로 표현되었음. 이 용법을 제외하면 15세기의 ‘-어 잇-’은 현대어로 오면서 두 갈래의 변화를 겪음. 완료상/결과상의 의미일 때에는 현대어에서도 통사적 구성의 자격을 지니고 있음. 과거시제의 의미일 때에는 하나의 선어말어미 ‘-었-’으로 지위가 바뀜. 통사적 구성 ‘-어 잇-’이 언제부터 선어말어미로 지위가 바뀌었는가에 대해서 는 학자들 사이에 異見이 많음. 형태상의 변화를 중시하는 이들은 15세기에 이미 선어말어미가 되었다고 보지만 기능과 분포의 변화를 중시하는 이는 변화의 시기를 근세어 후반으로 늦춰 잡음.
-다 > -ㄴ다 (모음 뒤) 15세기의 어미구조체 ‘-다’가 16세기에는 모음 뒤에서 ‘-ㄴ다’로 나타나기 시작. 15세기의 어미구조체 ‘-다’가 16세기에는 모음 뒤에서 ‘-ㄴ다’로 나타나기 시작. 15세기말의 杜詩諺解 권10에 이런 예가 이미 나타남: 가다>간다. 그러나 자음 뒤에서는 그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다’를 그대 로 유지: 먹다 ‘먹다’와 같이 선어말어미 ‘--’가 자음 뒤에서 ‘--’으로 나타나는 것은 17세기에 가서의 일. 한편 ‘잇-’의 유추에 의해 16세기에 ‘업-’(←없--)가 나타남. 15세기에는 ‘없-’이 형용사로서, ‘--’를 취하는 일이 없었음.
조사 조사 체계는 15·16세기 사이에 큰 변화가 없었음. 비교격 조사 ‘-두고’는 동사 ‘두-’의 활용형이 조사로 문법화한 것인데 15세기 에 이미 사용되고 있었음. 16세기에는 여기에 보조사 ‘-ㄴ’이 결합된 형태 ‘-두곤’, 여기에서 변화한 ‘-두군’, ‘-도곤’ 등이 나타남. ‘-브터’도 동사 ‘븥-’의 활용형이 문법화된 것인데 y, ‘ㄹ’ 뒤에서 ‘-우터’로 나타 나기도 함(‘ㅂ’>‘ㅸ’>ɦw의 변화) 한편 諺簡 자료에는 주격조사 ‘-가’로 볼 가능성이 있는 예가 몇 나타남. 구들 자니 가셰니러셔 로 니니 미 날로 허여 업서 가니 인나 알 제 내가[]픠오 디나 스고 마자 스노라 내가 긔걸고 오리 이실 겨규 도 아니코 가라 면 져믄 사도 몯 견 거시 내가어어흐로 이시리 니 몯 보내거니와 그런데 밑줄 친 부분을 어떻게 끊어 읽을 것인데에 따라 ‘가’를 주격조사로 볼 수도 있고 아닌 것으로 볼 수도 있음. 학자들에 따라 異見이 있으나 이 시기에 일반적으로 모음 뒤에서도 주격조사 ‘-가’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들 예의 것을 주격조사로 보기는 어려움.
어휘 15, 16세기의 특징적 차이 다가>만일에, 반기>반시, ->-/-, 조>종요(宗要), ->쟝만- ‘다가’는 15세기에 한문의 ‘若’을 언해할 때 항상 규칙적으로 쓰이던 부사인데, 16 세기에 오면 ‘다가’는 완전히 사라지고 대신 ‘만일에/만이레’ 일색이 됨. ‘반기’와 ‘반시’는 ㄱ-ㅅ 교체라는 韓國語史上의 특징적인 교체 현상을 대표. 한국어의 매우 이른 시기부터 語根末의 ‘ㄱ’과 ‘ㅅ’이 별 의미 차이 없이 교체되어 쓰이는 일이 있었음. 이것은 방언적 차이라고 볼 수도 있고 舊形과 新形의 관계라고도 볼 수 있음. 단어에 따라 두 가지 형식이 공조하기도 하고 ‘ㄱ’형이 문헌상 먼저 나타나기도 하고 그 반대 인 경우도 있음(즛>즉). 15세기의 ‘ㄱ’형이 16세기에 ‘ㅅ’형으로 나타나는 경향: 반>반, 번득>번듯, > ‘ㅇ’[ɦ]이 유추에 의해 다시 ‘ㄱ’으로 돌아간 것(아마괴>가마괴, 티>티) 과 같이, ‘ㅿ’도 이와 비슷한 예가 있음. 말->말삼-, -(←-설-)>설-, 두>두서, 한>한삼, 이->이슥-, 즈(渣滓)>즈싀. 16세기에도 ‘ㅿ’형과 ‘ㅅ’형이 공존하였을 것. ‘ㅿ’형은 16세기에 ‘ㅿ’의 소실에 따라 ø가 됨. 위의 예들은 대체로 ‘ㅿ’형(즉 ø형)이 오늘날의 중앙 방언에 이어짐. 기타 16세기 문헌의 특징적인 어휘 브(廚)>브,븟, 더품>거품, 초->초-, 염(羔), 몯지(會), 검줄(雜草)
좌측 문헌이 몇 세기 문헌인지 추측하고 그 근거를 밝히시오. 좌측 문헌이 몇 세기 문헌인지 추측하고 그 근거를 밝히시오. 답: 『內訓』은 15세기 말 成宗 때 처음 간행되었으나, 후대에 여러 차례 고쳐서 다시 간행하였음. 좌 측 문헌은 16세기에 간행된 버전. 16세기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 성조율동규칙: HHHH→HLLH 로(HLLH), 애와티논(RLLH)